군대에서 책을 참 열심히 읽었다. 아무런 자극도 주어지지 않는 공간에서 책은 유일한 숨구멍이었다. 얼추 200권쯤 읽었나보다. 하지만 자극이 없는 상태에서 책만 머리 속에 쑤셔 넣으니 이해가 되거나 기억에 남을리가 없다. 하지만 살다보면 고민과 갈등이 생기고, 내가 가진 능력 내에서 고민과 갈등이 해결되지 않을 때 ‘아, 이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왔던 것 같은데’하며 마음 속을 스쳐지나가는 책들이 있기 마련이다.
이번 탄자니아행으로 많은 고민이 머리속에 맴돌고 있다. 사업 분야 자체야 전공 쪽에 있지만, 실제 업무는 행정/관리라 경험이 전무한 상태. 일이야 열심히 배우면 되지만 정말 내가 정말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 하는 고민도 있고, 가서 어떤 구상을 가지고 사업을 추진할 것인지, 그 이후에는 무엇을 할 것인지,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 일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하는 고민들이다. 그리고 떠오른 책이 좋은 친구인 박선민의 스웨덴을 가다였다.(http://www.humanitasbook.co.kr/book/?mode=view&no=163&sort&p=1&mcat=A&scat&search=all&word=%BD%BA%BF%FE%B5%A7)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서문에 이런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진짜 문제는 그들이 아니라 나였다. 그들과 다른 ‘진보의 비전’을 말해야 했지만 현실 대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력과 실력은 다른 말이었고, 아무리 노력한들 나의 실력은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나만의 문제였던가.”
기생충을 밀어내면 그 다음은 무엇인가. 또 다른 무엇인가를 박멸하고 고치는 일로 뛰어들 것인가. 그렇게 닥치는대로 눈 앞에 보이는 문제만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인가. 기생충이 사라지면 사람들의 삶이 조금 나아질 수는 있겠지만, 거기서 끝날 일은 아니다. 사람들의 건강은 다른 이유로 또 악화될 것이며, 불평등도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그렇다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우리가 제삼세계 빈곤국가에서 스웨덴 같은 보건복지도 그려볼 수 있는 것 아닌가. ‘최소한’이 평등하게 돌아가는 것 보다는 ‘최대한’이 평등하게 돌아가는 세상을 꿈꾸어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작은 변화가 모여 큰 물결을 만들어 낸다지만, 어떤 물결을 만들어 낼 것인지에 대한 꿈이 없다면 더 많은 작은 변화들이 필요하고, 그만큼 더 많은 작은 사람들의 피해가 누적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새천년개발목표나 다양한 공적자금원조 등이 ‘현실 대응’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 - 특정 질병 사망률 감소, 보편적 초등교육 달성 등등 - 이런 하나하나의 목표들로 어떤 세상을 만들겠다는 꿈은 보이지 않는다.
과연 무슨 꿈을 위해 가는가. 책을 읽고 다시 고민해본다.
12:19 am • 26 May 2013
저번주와 저저번주 녹음 자료입니다. 정리는 엉망이지만…
예방접종 편 : http://byontae.iblug.com/index.jsp?cn=FP1332AD0N0052075
설사 편 : http://byontae.iblug.com/index.jsp?cn=FP1332AD5N0052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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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 설사편
여행자설사는 여행자들이 가장 자주 마주하게 되는 질병입니다. 전체 국제 여행객 중 20-50% 가량이 여행자 설사를 경험한다고 하지요. 숫자로 따지면 약 1000만명 가량입니다. 여행자 설사는 뭐라 정의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흔히 우리가 물갈이라고 하는 증상이기도 하지요. 여행 중 다른 기후, 환경, 식수, 음식, 오염원, 미생물, 병원균, 스트레스와 마주하게 되며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대체로 여행 중 경험하는 설사나, 여행의 결과로 설사가 일어나는 증상을 통칭하는데, 설사의 원인을 규명하는것이 쉽지 않죠. 여행자 설사는 대체로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심각한 경우는 드물지만, 매우 불편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주 병원을 찾는 이유가 됩니다.
여행 중 설사는 흔히 경험하게 되지만 이게 병원을 찾아야 할 만큼 심각한 것인지, 아니면 병원에서도 따로 해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에 집에서 휴식을 취해야 하는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대체로 여행자 설사의 증상은
1. 대변의 횟수나 양이 크게 증가하고
2. 하루 4-5회 이상의 설사
3. 대변을 참기 어려워지고
4. 복통, 메스꺼움, 구토, 고열
등을 동반합니다. 보통 며칠 정도 충분한 수분을 공급해주는 정도로 증상이 완화되거나 완치되는 경우가 많지만, 증상이 심해지면 병원을 찾아 진단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의사를 찾아야 하는 경우로는
1. 구토가 멈추지 않는 경우
2. 설사의 양과 횟수가 점차 늘어나며 혈변을 보는 경우
3. 39도 이상의 고열이 나타나는 경우
4. 입이 마르는 등 심각한 탈수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
5. 의식이 저하되고 반응이 느려지는 경우
6. 소변량이 줄어드는 경우
는 꼭 병원을 찾는 것이 좋습니다.
여행자 설사의 원인은 여행으로 인한 스트레스나 급격한 식단의 변화 때문일 수도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뭐니뭐니해도 병원균입니다. 박테리아, 바이러스, 기생충까지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여행자 설사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박테리아 감염입니다. 전체 케이스의 약 80% 가량이 박테리아 감염에 의해 일어나고, 그중 절반 이상이 대장균 감염이 원인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즉 대변으로 오염된 물이나 음식을 먹고 마셔 일어난다는 의미지요. 떄문에 저번 팟캐스트에서 언급했던것 처럼 먹고 마시는 것을 조심하는 것이 가장 좋은 예방법입니다. 물갈이라는 것도 사실 새로운 병원균에 노출되어 일어나는 현상일 수 있지요. 현지 사람들은 이미 자주 노출되어 충분한 면역력이 있지만, 새로 지역에 유입된 여행자들은 면역력이 없어 설사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몇가지 주요 위험요소라고 하면
1. 얼음
2. 과일, 샐러드
3. 정수 되지 않은 물
등이 있겠습니다. 얼음은 보통 지역 수도물을 그대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고, 제대로 위생관리를 하기 어렵다는 점이 있고, 과일이나 샐러드는 조리 과정에서 오염되기도 쉽고, 제대로 씻거나 손질하지 않을 경우 기생충알이나 박테리아등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병에 담겨 판매하지 않는 물 역시 마찬가지죠. 또한 지병이 있는 경우도 위험요소가 증가할 수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나 다른 지역에 여행해본 경험이 적어 다양한 미생물에 대한 저항력이 부족한 경우, 면역력이 저하되어 있는 경우, 본래 과민성 대장이나 당뇨병 등의 기저 질환이 있는 사람, 위염 때문에 제산제나 위산 억제제를 먹는 분들도 미생물이 살아서 장까지 갈 위험이 높지요.
여행자 설사는 한국에서는 물갈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지만, 영미권에서는 목테주마의 저주나 파라오의 복수 등의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중남미나 이집트 같은 중동 아프리카 지역에 다녀와서 심각한 설사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파라오의 무덤을 파헤치러 갔더 모험자들이 설사로 죽는 경우도 많았고, 남미 역시 마찬가지로 잉카의 마지막 황제인 목테주마가 저주를 내린 것이라고 보기도 했죠.
여행자 설사의 치료는 사실 대증요법인 경우가 많습니다. 항생제나 지사제를 먹기도 하지만, 그 효과도 미미할 뿐 아니라 오히려 더 심각한 증상을 초래할 수 있으니 약을 드시는 것은 꼭 의사와 상담을 하고 드시는 것이 좋습니다. 따라서 충분한 수분 보충과 식사량 조절, 자극적인 음식을 피하는 것으로 어느정도 조절이 가능합니다. 집에서 수분 보충을 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경구수액제를 만들어 먹는 것인데, 간단히 말해 병원에서 포도당 수액을을 혈관을 통해 주입해 준다면, 집에서 그것을 만들어 마시는 방법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보통 물 일리터에 소금 반티스푼, 설탕 6티스푼, 베이킹 소다 반의반 티스푼을 넣어 간단히 만들 수 있지요. 전해질 보충이 되기 때문에 수분 보충도 빨라져 탈수 증상 개선에도 효과가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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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편
일반적으로 필수 접종으로 성인이 맞아야 하는 경우
백신 소개 - 장기 여행의 경우 - 대체로 2-3만원 안팎
A형간염 : 2회 접종 , 10만원
B형간염 - 항체 검사 후 부스터, 2만원
Tdap : 10년 부스터,
독감, 인플루엔자 : 1년,
장티푸스, 콜레라(경구백신) : 2년,
황열병 : 10년 , 예방접종 증명서, 황색열, 사망률 7-8%
위험지역 여행의 경우, 수막구균 백신 16만원, 아프리카 중부 지역,
일반적인 해외여행 주의 사항
1. 끓여 먹고, 벗겨 먹고, 직접 조리 해 먹고
2. 긴팔 긴바지
3. 물은 생수나 병에 든 물만
4. 소독 안된 물에서 수영하지 말것
5. 하이킹 물 떠먹지 말고
6. 동굴에서 박쥐 조심
7. 더운나라만 위험한가요, 아메바성 이질 등은 온열대지방 가리지 않고 유행,
해외여행질병정보센터 참고, cdc.gov/travel 이용, 여행의학 전문으로 하시는 의사가 있는곳에서 상담을,
10:15 am • 25 May 2013 • 1 note
1. 요즘 대형제약회사들의 소외열대질환 퇴치 참여가 활발해지고 있다. (http://www.bbc.co.uk/news/business-22476556) 머크가 아프리카 서부의 강변사상충증 퇴치에 약물을 무상으로 무한정 공급해 준 것은 오래된 이야기고, 최근에는 단순히 약물 지원 뿐 아니라 개발이나 공중 보건 정책의 형성에도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물론 GSK 대표의 인터뷰 내용 상에서는 대형 제약회사들의 행태에 상당히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어, 이런 민간 부분의 참여를 긍정적으로 바라 볼 수도 있을 것 같지만. 한편에서는 과연 민간 부분의 지나친 개입이 오히려 공공의 것이어야 할 보건이나 소외열대질환 퇴치 사업들을 회사의 입맛에 맞추어 끌고 가게 되는 현실로 이어지지 않겠느냐는 견해도 있다.(http://www.guardian.co.uk/world/2013/apr/29/drug-company-donations-bigpharma?CMP=twt_gu) 이런 부분에서 균형을 맞춰줄 매개체의 존재가 매우 중요할 것 같다.
2. 이번에 영국에서 남아공으로의 직접적인 지원을 중단하기로 했다.(http://www.bbc.co.uk/news/uk-22348326) 이제 남아공이 충분한 소득수준에 이르렀다는 판단에서 결정한 출구전략 쯤 되는 듯 하다. 하지만 이로 인해 과연 원조의 출구전략이 언제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일단은 bbc 링크만 연결해 놓았지만, 가디언의 global development 등에 가면 좋은 칼럼들이 많이 나와 있으니 한번씩 읽어볼만. 더불어 조효제 교수님이 옮긴 을 읽고 있는데 생각거리가 많다.
3. 최근 말라리아 이노베이션 탑10이라고 해서 몇몇 기술적 해법들이 꽤 많은 조명을 받았더랬다.(http://www.guardian.co.uk/global-development-professionals-network/2013/apr/29/malaria-innovations-top-ten-world-malaria-day?CMP=twt_gu) 특히 아프리카의 현실에 적용가능한 손쉬운 기술들이 많은 점수를 받았는데, 이런 적정기술에 대한 관심이 요즘 갑자기 한국에서도 유행처럼 불어닥치고 있다. 이번에 같이 교육 받는 분 중 적정기술 관련 일을 하신 분이 있는데, 그 분 말씀이 ‘이미 제삼세계 사람들도 첨단 기술에 대해서 대충은 알고 있다. 그런데 적정기술로 만족하겠느냐.’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심지어 적정기술이라고 하더라도 실제 그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생산해서 소득을 창출하고 지역사회를 개발할 수 있는 부분에는 너무 많은 한계가 있지 않는가, 그런 의미에서 적정기술이라는 것은 과도기의 한 단계일 뿐이지 그걸 궁극적인 해법으로 보는 시각에는 심대한 결함이 있는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4. 최근에 한동안 진화의학(다윈의학)에 대한 이야기가 좀 조용하더니 BMC에서 간만에 기획을 내놓았다.(http://www.biomedcentral.com/bmcmed/series/EvolMed) 다 재미있지는 않지만, 에디토리얼이나 리뷰는 꽤 괜찮음.
12:50 am • 12 May 2013
1. 아무래도 탄자니아에 가면 주혈흡충이 주요 감염증이니까 이래저래 뒤져보고 있는데 주혈흡충을 비롯한 소외열대질환들이 정말 많은 곳에 엮여 있구나,라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된다. 주혈흡충은 주로 방광 등의 혈관에 기생하면서 혈뇨, 비뇨기과 질환, 방광암 등을 일으킨다. 이걸 단순히 감염성 질환으로 생각하면 간단한 문제일 수도 있는데 현재 아프리카에서 HIV 유행이 심각하다는걸 고려해 보면, 문제가 그리 간단치 않다. (http://blogs.plos.org/speakingofmedicine/2013/05/06/female-genital-schistosomiasis-fgs-sub-saharan-africas-secret-scourge-of-girls-and-women/) HIV는 성관계를 통해 주로 감염되는데, 감염 경로는 정액 등 체액에 들어있는 바이러스, 혹은 성관계 중 발생한 상처를 통해 혈액과 접촉해서 감염된다. 그런데 주혈흡충에 걸려 혈뇨가 발생하거나 비뇨기과 질환이 발생하면 그만큼 성관계 중 유출되는 혈액량도 증가하고, 바이러스를 막아줄 일차적 방어막인 점막과 피부가 손상되어 그만큼 감염에 취약해진다. 즉 주혈흡충을 예방하는 것이 HIV 유병률 감소와 모자보건향상에도 연계되는 셈이다.
2. 해마가 손상되어 새로운 기억을 생성할 수 없어 영원히 현재에 살게 된 Henry Molaison의 이야기.(http://www.guardian.co.uk/science/2013/may/05/henry-molaison-amnesiac-corkin-book-feature) 올리버 색스의 책에도 등장하고, 뇌와 관련된 책이라면 꼭 등장하는 사람이다. 기사 제목에 적힌대로 뇌과학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기사를 읽으면서 든 생각. 결국 5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실험대상으로만 살아온 셈인데 과연 이것이 이렇게 따뜻하고 훈훈하게 포장될 수 있는 일일까? 이런 상태에서 과연 본인의 ‘동의’를 얻는다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일까. 연구자는 이것이 윤리적으로, 아니 사람으로서 올바른 일인지 끊임없이 자문해야 했던것 아닐까. 이걸 이렇게 책으로까지 자랑스럽게 포장할 수 있는 일인지 모르겠다.
3. 영국에서는 저번달부터 발생한 홍역 유행으로 이제 백신 논란이 슬슬 잠재워져 가는 분위기인데, 엄하게 소말리아에서 후폭풍이 불고 있다고.(http://www.bbc.co.uk/news/health-22382756) 나도 스와질랜드에서 상담 할 때 아이들 백신 꼭 맞춰야 하나고, 위험한거 아니냐고 해서 이런 소문이 정말 멀리까지 퍼지는구나 놀란 적이 있었는데 소말리아까지 영향권에 들어왔다니. 정말 처음에 백신과 자폐증 소문을 퍼뜨린 웨이크필드 이 인간은 어디 반인도적 행위로 국제재판소에 고소라도 해야하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4. 고등학교 생물 선생님이 한 말은 아직도 내 뇌리에 남아있다. 어찌보면 내가 학문을 대하는 태도에 상당한 영향을 준 한마디가 아닐까 싶은데 ‘너희가 지금 진실이라고 배우는건 사실 진실이 아니야. 언제든 바뀔 수 있는 진실이지. 고등학교 수준에서 간단히 줄여지고 맥락없이 배우는 진실은 진실이라고 할 수 없지. 공부하다보면 알게 될꺼야.’ 어쨌든 최근 성인의 난소에서 난자를 만들 수 있는 줄기세포가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있어서 이 이야기가 떠올랐다.(http://www.nature.com/news/egg-making-stem-cells-found-in-adult-ovaries-1.10121) 생물시간이나 성교육 시간에 여성은 태어날 때 한정된 숫자의 난자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을 마치 도그마처럼 배워왔는데, 그게 아니라 계속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내용. 불임 치료에도 새 장을 열어줄 수도 있고. 여튼 추후 연구가 기대된다.
10:02 pm • 7 May 2013 • 2 notes
이번주 빈대 이야기 내용입니다. 빈대 이야기 식기 전에 드세요.
http://byontae.iblug.com/index.jsp?cn=FP1332AC8N0050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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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벼룩에 이은 체외기생충 빈대 이야기입니다. 옛부터 사람들과 가장 친분이 깊은(?) 기생충이기도 하지요. 벼룩과 이와 빈대라는 민담도 있고, 지금도 흔히 쓰는 빈대 붙다 같은 표현도 있는데다 빈대떡이라는 음식도 있고 빈대 잡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속담도 있지요. 이처럼 빈대는 사람들의 일상 생활에 깊이 들어와 있는 기생충이었습니다. 옛날에는 살아있는 빈대를 으깨어 ‘메스꺼운 치료제’로 쓰기도 했다고 합니다.(…) 어쨌든 주거환경이 개선되면서 국내에서는 급격히 사라져 이제는 찾아보기 어려워졌죠. 빈대의 생김새도 모르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진중공업에서 노동운동을 했던 김진숙 위원장님의 책 소금꽃 나무를 보면 80-90년대에도 환경이 열악했던 곳에서는 여전히 빈대가 많았음을 알 수 있지요.
빈대는 짙은 적갈색이며 몸길이는 5mm 안팎입니다. 불완전변태를 하기 때문에 유충때도 성충과 모습이 거의 동일하지요. 몸길이만 짧습니다. 흡혈을 하기 전에는 납작한 몸체를 지니고 있어 메트리스 접힌 부분, 벽 사이의 작은 틈, 침대 프레임의 사이사이, 마루바닥 틈새, 가구나 옷 사이 등 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어 있습니다. 흡혈을 마친 빈대는 적갈색의 - 마른 피 색깔 - 배설물을 내놓는데, 침대 주변이나 메트리스 등에 흘러내린 자국이 남게 됩니다. 이 자국을 통해 빈대의 은신처를 찾아내기도 하죠. 또 빈대는 특유의 냄새가 있어서 빈대가 아주 많을 경우 은신처 근처에서 냄새를 맡아 찾아내기도 합니다. 빈대의 생존능력은 상당한데 먹이 없이 4개월 이상 살 수 있고, 배불리 흡혈한 상태에서는 최장 18개월까지 살 수 있습니다. 게다가 먹을게 없으면 서로 잡아먹기도 하기 때문에 - 정확히는 체액을 빨아 먹는 것이지만 - 먹이가 없어도 상당기간 생존이 가능합니다.
한동안 주거환경의 개선 등으로 전세계에서 빈대가 많이 사라져가는 추세였는데, 요즘은 의외로 런던이나 뉴욕 같은 대도시들을 중심으로 빈대가 다시금 활개를 치고 있다는 소식들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외국에 살다 귀국한 가정에서 빈대가 발생했다는 보고가 몇건 들어와 있습니다. 따로 관리대상에 들어가는 체외기생충이 아니기 때문에 질병관리본부에 보고가 들어온 건수가 세건이지, 실제로 세스코 같은 민간업체에 의뢰가 들어오는 경우는 최근 급격히 늘었다고 합니다. 한국 등의 지역보다도 영국이나 미국 같은 서구지역에서 빈대의 피해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것은 어디선가 재유입되어 그렇게 된 것도 있지만, 침대를 많이 사용하고 카펫 등 빈대가 숨기 좋은 은신처가 더 많이 확보되는 서양식 주택의 특성 때문에도 그런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여행객 등 인구유동이 더 많은 런던이나 뉴욕 같은 대도시는 타 지역에서 빈대가 재유입되기도 그만큽 쉽겠지요. 최근 대형 호텔들이 골치를 썩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옵니다.
빈대는 딱히 질병을 옮기지는 않지만, 물리면 무척 가렵습니다. 여기에도 개인차가 있는데 물린 사람 중 약 1/3은 거의 반응을 보이지 않는데 비해 어떤 사람들은 빈대가 걸어간 자국마다 염증반응이 일어나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질 정도의 피부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또 하나 독특한 점은 빈대가 나병, 브루셀라, 샤가스, 황열 등 실험실 상에서는 다양한 질병을 옮길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지만, 실제 생태계 내애서는 질병을 옮긴 예가 없다는 점입니다. 어떤 기전으로 체내에서 이런 병원균의 발생과 전파를 억제하는 것인지도 하나의 연구 대상이기도 하죠.
빈대는 방제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체외기생충이나 해충 중 살충제 저항성이 가장 높은 녀석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죠. 때문에 그냥 집 안 가구를 다 버리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는 사람도 있지요. 런던 시내에서는 길에 멀쩡한 가구나 침대 프레임, 메트리스 등이 버려져 있는 광경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적지 않은 케이스가 빈대에 오염된 가구를 버린 것입니다. 멋모르고 주워왔다가는 다음날 빈대에게 헌혈을 하는 비극이 일어날 수도 있지요. 올 초에는 영국에서 빈대에 오염된 쇼파에 소독용 알콜을 뿌려 방제해 보려던 아주머니가 실수로 알콜에 불이 붙어 집이 전소된 이야기도 전해졌습니다. 속담 그대로 빈대 잡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죠. 그만큼 빈대가 짜증나고 잡기 어렵다는 의미기도 하겠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틈 안이나 메트리스 사이에 숨어 있기 때문에 직접 살충제에 노출시키기도 어렵구요. 때문에 연막소독 등의 방법을 많이 사용합니다.
빈대의 가장 독특한 특성이라면 바로 짝짓기입니다. 굉장히 거칠거든요. 빈대는 짝짓기 과정에서 외상성 사정이라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암수모두 생식기관이 있지만, 암컷의 생식기관은 단순히 산란에만 쓰입니다. 수컷은 암컷의 몸 아무곳에나 생식기를 찔러 넣고 체액 안에 사정을 하지요. 이렇게 들어간 정자들은 몸 안을 헤엄쳐가 난소에 도달해 수정을 시킵니다. 실험실 상황에서처럼 개체 밀도가 높은 환경에서는 이런 외상성 사정에 너무 많은 상처를 입어 암컷이 죽는 경우도 많지요. 물론 짝짓기 시기에 도달한 수컷들은 암컷 수컷 가리지 않고 찔러 넣어 사정을 하기 때문에 실험실에서 키우던 집단이 거의 몰살당하는 경우도 종종 생깁니다. 여튼 가장 거친 짝짓기 과정을 보이는 동물 집단으로 손에 꼽을 수 있죠.
7:21 pm • 7 May 2013